일산의 역사
일산은 신도시 개발 전 전쟁 피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농촌 지역이었다. 홍수가 자주 일어날 정도로 저지대이기도 했다.
1980년대 노태우 정권 시절 3저 현상(저금리, 저환율, 저유가)과 88서울올림픽 개최 등에 따른 대규모 도시 개발 사업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 현상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집값 안정,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 공약을 발표한다.
1기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산본, 중동 평촌을 개발한다고 발표했으나 이후에도 집값이 안정되지 않자 2차로 일산과 분당을 추가 발표했다. 이로 인해 주택 보급률이 1985년 69.8%에서 1991년 74.2%로 상승한다.
1기 신도시는 서울에서 약 20k 거리로 접근성과 교통여건이 좋았지만 본래 일산신도시는 노태우 정권의 아파트 보급 공약의 일환으로 건설된 지구로, 서울 도심 및 영등포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주거 도시 개념이어서 집만 있고 편의시설이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 거주민들은 일산을 잠만 자는 곳, ‘베드타운(Bed Town)’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 밀도가 증가하면서 1995년 무렵부터는 자체적으로 행정, 문화 기능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시작이 이렇다 보니 아직까지도 일산에는 서울에 있는 직장이나 대학교를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때문에 생활에 대한 시설들, 주로 청소년 시설이나 복지 시설이 많다.
개발 당시 신도시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농사짓고 토박이로 살던 사람들이 많았다. 대대손손 내려오던 터가 사라지며 고향에 대한 역사가 없어지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사를 자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니.